언젠가부터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대신 노트북으로, 아이패드로,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이야기 한다. 굳이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여기서 보나 저기서 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그들을 위해 이 장르(혹은 공연)를 만들었다.
씨네마틱 퍼포먼스. 영화적인 공연, 공연같은 영화. 이 장르의 목표는 간단하다. 반드시 극장에서만 봐야하는 영화를 만들자. 굳이 극장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자. 복제가능한 미디어를 복제불가능하게 변주시킴으로써.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만 가능한 체험을 안겨줌으로써.
그렇다고 해서 이 장르가 단순히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앞의 무대에서는 무용수 몇몇이 춤을 추는 물리적 결합일 것이라고 단정 짓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우리는 영화에 공연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공연에 영화를 녹여들인다. 공연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현재성, 동시성, 복제불가능성이 영화에 접목되고, 영화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씨네마틱 특성들이 공연에 녹아든다.
첫번 째, 우리는 시네마틱 퍼포먼스를 통해 사이즈의 변화를 공연에서 구현할 수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무용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보여주는 공연과 달리 이 공연에서는 익스트림 롱 샷에서
익스트림 클로즈업까지 자유자재로 사이즈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무용수의 표정, 손동작 뿐만 아니라 그/그녀의 미간의 작은 떨림, 손끝의 미묘한 변화까지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번 째, 씨네마틱 퍼포먼스에서 관객은 정해진 구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관객은 무대의 정면만을 보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대의 아래쪽, 측면, 심지어 무용수의 머리 위를 내려다 볼 수도 있다. 다각도로 재구성되는 공연은 2차원적인 평면에서 벗어나 비로소 깊이감있는 입체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편집을 공연에서 구현가능해진다. 공연은 더이상 일직선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교차편집과 몽타쥬기법의 도입을 통해 공연이 가지던 선형적 내러티브는 자유롭게 변이되어, 영화와 함께 녹아든다.
영상 언어와 몸의 언어가 만나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만 유일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이며 동시에 영화의 미래를 새롭게 제안하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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